'각자도사 사회' 북칼럼
개인과 공동체, 국가가 함께하는 유토피아
김상인
사랑하는 무언가가 생긴 사람은 쉽게 비합리적으로 변한다. 평소 운전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은 멀리 사는 연인과 만나기 위해 장거리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삶이 궁색한 사람은 고가의 물건을 구매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환심을 얻기 위해 선물한다. ‘모든 이타심은 이기심’이라고 했다. 모두가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것을 –그것이 무엇이든– 아낌없이 내어 주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갈망한다.
부모가 말도 못 하는 아이를 돌보는 것도, 자식이 늙고 병들어 혼자서는 살기 힘든 부모를 돌보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무가치해 보일 수 있는 식물을 기르는 것도,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애완동물이 쾌적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도 모두 이타적이며 비합리적 행동이다. 요컨대 돌봄은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뉴스나 요양원에 입원한 환자가 비인간적 처우를 받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음 아픈 소식이지만 사랑이 빠진 돌봄에 따뜻함이 존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돌봄은 강제할 수 없기에 개인의 영역에 속한다. 정부의 지원과 돌봄 정책은 ‘주’가 아닌 ‘부’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 없이는 누구도 늙고 병들거나 어려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돌봄이 필요한 약자’를 진심으로 오랫동안 돌봐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봄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소규모로 이루어진 지역공동체와 이웃 간의 교류가 사라진, 고도로 자본화된 사회에 거주하는 많은 이들이 점점 돌봄의 영역에서 소외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철학자 강신주는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이기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환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교환이라면, 이타적 개인 혹은 사랑에 빠진 개인이 타인의 행복을 위해 교환하는 것이 사랑의 교환이자 공동체적 교환이에요.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공동체가 거래 관계가 되어버리면 교환이 동등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혼자 살 때보다 같이 살 때가 힘들고 이득이 안 된다고 생각되면 같이 살 필요가 없는 거죠. 아이가 생기면 생활이 더 힘들어지는데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자본주의가 가족공동체와 지역공동체를 와해시킨 거예요. 가족 구성원을 자본주의적 인간형으로 만들어버리니 공동체를 유지하지 못하는 거죠.”
-강신주,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중-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중은 2015년 27.2%에서 2021년 33.4%로 높아졌다. 2050년에는 이 수치가 39.6%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1인 가구 중 70세 이상이 36%, 29세 이하가 30.6%를 차지하며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다. ‘보호자’ 없는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최근 심해진 저출산·고령화 현상으로 돌봄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 차원의 최소한의 돌봄 시스템을 통해 시민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정책 로드맵이 필요하다. 책 ‘각자도사 사회’의 저자는 사회구성원의 존엄한 죽음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사회 시스템 안에서 돌봄의 문제가 적절히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죽음은 의료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의 문제에 가깝다. 죽음은 개인적인 일인 동시에 내가 사는 일상, 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다.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이야기로 국한할 수 없다. 존엄하게 죽기 위해서는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안에 있어야 한다.”
-송병기, ‘각자도사 사회’ 중-
2021년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김진애 당시 열린 민주당 후보는 복지 정책으로 ‘돌봄 오아시스 플랫폼’을 제안했다. 그는 “1인 가구 증가와 전체 인구 감소, 고령화·저출산 등으로 돌봄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서로 돌봐주는 플랫폼을 구상했다”면서, “돌봄은 AI도 못하고 4차 산업혁명이 못하고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공동체의 돌봄 기능 복원을 제도화를 통해 이루어내고자 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2018년부터 시작된 지역사회 통합돌봄 서비스를 통해 어르신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포용 국가가 되겠다는 비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돌봄의 주체와 대상 모두를 만족하게 할 사각지대 없는 복지 정책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닿을 수 없는 세상의 일처럼 보일지라도, 정책이 소수의 의견을 받아들여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공동체가 개인의 짐을 덜어내 촘촘한 복지 그물망이 만들어진다면, 기본권을 누리고 존엄하게 살아가다 죽을 수 있는 인간의 권리가 보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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