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북칼럼
슬기로운 마음가짐
김상인
어제 단골 미용실엘 갔다. 요즘 주변의 많은 이가 스마일 라식이니 라섹이니 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하여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자를 겸 관련 정보를 얻어볼 심산이었다. 미용사는 2년 전에 라식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수술에 만족한다고 말하며 그 미용사는 덧붙였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눈이 좋아지니 40년을 나쁜 눈을 가지고 살고서도 원래 눈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이 느껴져요”.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다. 어느새인가 목 뒤에 자리 잡고 조금씩 커진 ‘후두부 종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병원 가는 것을 미루었다. 몇 해 전 대학병원 이비인후과에서 그 혹을 제거한 후, 어쩌다 한 번씩 매끈해진 목 위편을 만질 때야 비로소 내게 혹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새로움이 익숙해지면 이를 당연히 여기는 심리는 개인에게 국한된 일은 아니다. 천부인권의 개념이 유럽에서 성장한 것은 겨우 3세기 전 일이다. 대한민국이 왕조 국가에서 벗어난 지는 120년 남짓 되었을 뿐이다. 약 50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 권력에 의한 고문과 인권 침탈은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의 시민들은 무신 신권력에 의한 무차별적 압수수색을 제외하고는 인권 침탈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고 있다. 만일 조선의 ‘신민’들이 요즘 유행하는 ‘이세계물’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로 와서 살게 된다면 한 달 만에 적응하고 우리의 피땀 어린 ‘자유’를 원래 있었던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당연히 여길 것이다.
“아버지는 1948년 초, 5·10 단선반대 유인물을 살포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아버지 성기에 전선을 꽂고 전기고문을 했다. 전기고문은 사시 말고도 또 다른 후유증을 남겼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中 -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책에는 화자의 아버지가 헤쳐온 한국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금의 ‘당연’한 권리가 쟁취된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1900년대의 굶주림과 한국 전쟁 당시 참혹함을 알지 못한다. 살아가는 누구나 자신만의 짐을 어깨에 지고 살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의 걱정거리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의 대한민국은 과거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모든 영역에서 눈부시게 성장한 살기 좋은 국가 중 하나라는 것이다. 최소한의 사회보장제도가 갖춰져 있으며 누구나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인권에 대한 인식, 민주주의 성숙도, 시민의식이 가장 성장한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검찰권이라는 ‘합법적 폭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면서, 국가의 자주와 국민의 자존을 미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 발아래 굴리는 대통령의 행태를 나는 우습게 여긴다. 탱크와 총칼과 최루탄과 고문과 백골단의 몽둥이를 겪은 우리 세대가 보기에 고소·고발과 검찰권으로 만사에 대처하려는 정권의 행태는 장난감 총으로 하는 병정놀이와 같다.”
- 유시민 ‘천벌 같은 건 없다’ 中 -
유시민 작가가 언론사 '민들레'에 기고한 '천벌 같은 건 없다'라는 글 일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검찰 공화국이 된 지금이 현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최악의 시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경제는 퇴행하고 민주주의의 위기가 눈앞에 닥쳐있으며 극복해나가야 할 산적한 국가적 과제의 해결은 난망한 상황에서 마음을 다잡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고통이 있기에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며, 어둠이 존재하기에 빛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무현의 말처럼, 역사는 더디지만 진보한다.
지금이 과거보단 나아졌으니 불평 없이 진보하는 역사를 믿고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다. 더디지만 진보하는 역사는 수많은 사람의 발전된 방향으로서의 역사를 바라는 마음이 모여 전진한다. 이른바 ‘깨어있는 시민’ 으로서의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민주 사회를 살아나가는 시민들에게 필요하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시민이라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자. 권력의 잘못을 당당히 지적하고 누구 보다 앞장서서 행동하여 역사의 전진에 보탬이 되려고 노력하자.
우리가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문제를 직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있다면 그것은 언제고 해결된다. 물론 모두가 원하는 속도로 가지는 못하겠지만,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면 역사는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문제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때 생긴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에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겠다. 슬기로운 마음가짐으로 연대하며 생각을 모으고 행동하면, 어느새 한 계단 더 높은 곳에 올라와 있는 공동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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