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들' 북칼럼
인도 위의 택배 화물차
몇 주 전 종로 3가의 번잡한 거리를 지날 때의 일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건널목을 건너려 인도에서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경적이 울렸다. 주변의 사람은 나뿐이었고, 차도 한 대뿐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그 차가 나에게 경적을 울렸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차량은 선명한 택배사의 로고가 붙은 택배 화물차였고, 인도에 차를 주차하기 위해 나에게 경적을 울렸음을 조금씩 나를 향해 인도로 올라오는 것을 보며 알아차릴 수 있었다.
평소라면 인상을 찌푸리며 운전석의 기사를 응시하고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을 테지만, 그 택배 기사와 눈이 마주친 순간 웃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그 택배 기사의 미안해하는 표정과 손짓 때문이었다. 잠깐 움직이기만 한다면 길 비켜주는 것이야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고 무심하게 그 길을 지나쳐 갔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같은 길을 가다 인도의 같은 자리에 세워진 그 택배 기사의 차를 봤다. 그 차의 앞 유리와 와이퍼 사이에는, 주정차 금지구역 위반 과태료 부과 대상 차량임을 알리는 딱지가 붙어있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손동작으로 불편함을 끼쳐 미안하다는 마음을 표시하던 그 택배 기사가 떠올랐다.
최저임금위원회가 2021년 진행한 연구용역인 '플랫폼노동자의 생활실태를 통해 살펴본 최저임금 적용방안'에 따르면, 플랫폼노동자의 시급은 7,289원으로 2021년 최저임금인 시간당 8,720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2023년 5월 서비스연맹에서 진행한 설문조사(택배 기사, 배달 라이더,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 기사, 방문점검원, 마트 배송기사, 학습지 교사, 방과 후 강사 968명) 역시 비슷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2023년 7월 3일부터 15일간 윤석열 정권 퇴진을 내건 총파업을 전개했다. 그 첫날인 3일 서비스연맹 특수고용노동자들은 “‘특수한 고용’에 묶인 노동자들의 평균 시급이 현재의 최저임금에 한참 미치지 못하며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는 직종이라 각종 방송에서 소개하지만, 실상은 고객과의 약속에 맞추느라 이동시간, 대기시간 등을 아무 보상 없이 공짜노동하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노조법 2·3조 개정, 법적 안전망 마련, 실질임금 인상과 최저임금 보장을 요구했다.
특수고용노동자가 대면하는 가장 크며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자’라는 이름이 붙고 고용주에게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지만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인 노동 3권은 물론이거니와 최저시급을 보장받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기형적 노동구조의 탈피를 위해 택배 기사로 대표되는 극소수 특수고용노동자가 많은 돈을 번다는 자극적이며 공적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인 언론의 보도행태부터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 증진을 위해 교섭 단결권을 행사하고 파업을 벌이는 일에 대한 국민적 인식 개선 노력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종로 3가의 택배 기사가 인도에 차를 정차시킨 것은 위법 사항임이 분명하다. 이는 불법 주정차를 했던 택배 기사도 분명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내 마음이 쓰인다. 그 택배 아저씨의 마음은 어떨까. 평소 원칙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오늘은 밥벌이의 준엄함을 지키고자 불법주차를 한 사람 좋아 보이던 택배 아저씨에게 마음이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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