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트;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북칼럼
솜사탕 맛 커피
김상인
처음으로 마셔본 커피는 쓰기만 했다. 이걸 무슨 맛으로 먹나 싶었다. 하지만 술이 그랬던 것처럼 입에 익숙해지니 맛이 느껴졌다. 고소하고 쌉쌀한 쓴맛. 남들이 맛있다 맛있다 하니 써도 어른처럼 참고 마셔봐야지 생각했다. 매번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계속 마시다 보니 커피는 다 비슷한 맛이겠거니 섣불리 짐작했다. 일하면서 마셨던 커피는 머릿속 끊어진 기억을 이어주는 화합물로서의 카페인을 섭취하는 용도일 뿐이었다. 그래서 항상 제일 큰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을 추가해서 주문했다. 그러던 어느 날 햇살 좋은 카페에서 숙련된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정성 가득 담긴 커피에서 꽃향기가 나는 걸 느꼈다. 새로웠다. 내가 매일 마시던 커피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언젠간 나도 이런 커피를 내려보리라 생각했다.
카페를 차리려고 커피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커피는 기본적으로 커피나무가 자라는 토양과 품종, 그해 날씨와 수확 시기에 따라 다른 생두(Green bean) 상태를 가지게 된다. 커피 열매를 생두로 만드는 방식도 꽤 다양하다. 커피 과육을 자연발효시키는 방법(Natural), 물로 씻어내는 방법(Washed), 무산소 발효 (anaerobic) 시키는 방법 등이 대표적이다. 펄핑(pulping)이라 불리는 과육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 생두 상태의 커피는 열의 전도, 대류, 복사를 이용하여 가스나 전기나 할로겐과 같은 다양한 열원을 이용하는 로스터기를 통해 볶는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높은 온도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 볶아내는지에 따라 생두는 각기 다른 맛을 내는 원두로 변한다.
완성된 커피 원두를 가루로 만들어 추출하는 것에도 꽤 다양한 방식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커피 추출은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하는 것이다. 원두를 매우 작은 알갱이로 15g 정도 분쇄하여 대기압의 9배의 압력으로 (9BAR) 20~30초가량 추출하면 30-40mL의 에스프레소가 완성된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유량과 추출수의 온도, 포터필터(Porter filter)에 담긴 커피의 양과 분쇄 정도에 따라 겉보기에 비슷해보이는 에스프레소는 모두 다른 맛을 낸다. 종이 필터로 커피를 여과시켜 만든 핸드드립 커피도 다양한 추출 변수를 가지고 있다. 커피 입자의 분쇄 정도, 추출수의 온도와 양, 드리퍼(Dripper)의 종류와 추출에 걸리는 시간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는 커피가 만들어진다.
많은 추출 변수 중, ‘온도’는 맛의 풍미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물의 온도에 따라 커피에서 추출되는 성분이 많아지거나 적어지기에 특정 원두에 적합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한다. 100도의 끓인 물은 전기포트에서 차가운 드립 포트와 커피가 담긴 드리퍼에 옮길 때마다 약 5도의 손실이 생긴다. 추출 과정에서 열의 손실을 예방하기 위해 커피 드리퍼와 드립 포트를 미리 따뜻한 물로 데우기도 한다. 커피가 담기는 서버와 잔조차도 미리 데우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애써 내린 커피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맛과 향을 선사하고, 우리의 입과 코를 즐겁게 하는 하루의 쉼표가 된다.
솔직히 좀 놀라웠다. 커피는 다 같은 커피고, 맛이 달라 봐야 얼마나 다르겠나 했다. 하지만 이렇게 너른 다양성으로 채워진 세계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새로운 것에 눈을 뜨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서는 위치가 달라지면 보이는 것이 다르고, 최고라고 생각하는 풍경에서 몇 걸음 더 가면 더 나은 풍경이 보인다. 나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갈 때마다 다름을 인정하고 세계를 존중하리라 다짐한다. 내 생각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반대로 사회가 규정하고 주위 사람들이 모두 맞는 것이라 해도 내가 스스로 겪어내지 못하면 나에겐 틀린 것일 수 있다.
‘세상에 같은 커피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오늘 내가 마신 커피는 동일한 생두를 같은 방식으로 가공했다 하더라도 추출 온도와 압력, 그날의 온습도와 바리스타의 컨디션 등의 다양한 변수에 따라 추출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마시는 커피는 살면서 맛보는 유일한 맛의 커피가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커피보다 더 복잡한 타인과의 상호작용과 서로 다른 교육과정, 또래집단, 부모와 소속단체를 거치며 자란다.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가 뚜렷한 개성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한다. 경험해 볼 수 없는 길을 걸어온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란 불가능하다.
이 땅에는 광장에서 서로 다른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도, 정당을 바꿔가며 직업적 연명을 위해 철학 없는 정치를 하는 사람도 있다. MIT 공대에 합격한 누군가의 딸에게 함무라비 법전을 들어 보이는 사람들도, 퇴임하여 농부로 살아가는 전직 대통령에게 현실의 정치에 다시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라는 사람들도 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정당의 주인은 당원임을 부정하는 사람도, 아무 죄 없는 과일에 난데없는 오명을 씌운 장본인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의 세계에서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가진 하나의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認定)하지 않고 상대편에 선 타인을 이해(理解)하려고 하는 순간 혐오는 시작되고 집단과 사회는 끝없이 갈라진다.
커피 공부를 시작할 무렵, 컵노트에 ‘솜사탕’이라고 쓰여 있는 커피를 마셔볼 기회가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커피에서 솜사탕 맛이 난다고? 향과 미각에 둔감한 나는 솜사탕 맛을 느끼지 못했다. 커피 교과서 센서리 부분에는 “아무리 뛰어난 감각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경험하지 못한 향기에 대해 평가하지는 못할 것이며,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차후에 그 향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좋은 커퍼가 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마셔도 솜사탕 맛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될 거라고 믿는다. 내가 아직 모르는 그 맛과 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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