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다음 소희’는 예상한 대로 먹먹했다. 상영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에 내내 생각했다. 소희의 죽음은 누구의 잘못일까.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다. 나의 선택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축복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의미 없는 삶의 지속이 주는 고통보다는 죽는 것이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겠다. 하지만 소희의 죽음은 본질적으로 사회의 타살로 불려야 마땅하다.
영화를 제작한 감독이 던지는 사회에 대한 메시지는 의외로 간단하다. 더는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선, 우리 사회의 사회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는 분명한 정치의 영역이다. 다시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근로기준법에 새로운 조항을 추가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하고, 법의 개정과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더 이뤄진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렇듯 사각지대는 존재할 것이다. 인간이 하는 일은 완전하지 못한 탓이며, 심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소시민이 아닌 자본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변을 돌아보는 시선과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공감이다. 극중 형사를 연기한 배두나가 소희와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소희의 선배에게 참지 못할 일이 생긴다면 나에게라도, 경찰에게 이야기해도 된다고 했던 말 속에 담긴 위로와 공감은 소희의 선배에게 큰 위안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누구든 소희에게 괜찮다고, 그만두고 다른 일 찾으면 된다고, 힘들면 그만해도 된다고, 네가 잘못한 것 없다고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부모든, 친구든, 선생님이든, 동료든 간에 말이다.
소희는 이미 죽었다. 팀장도,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도 매일 죽어간다. 이제는 침묵의 방관자가 되는 대신, 주변을 돌아보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며,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돌아보자. 다음 소희의 감독이 그랬듯, 극 중 형사인 유진이 그랬듯이. 애초에 고등학생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오길, 애초에 꺾일 일이 없는 세상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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