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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칼럼

호기심, 용기 그리고 MB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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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보며 빵을 굽다 | 쓰카모토 쿠미 - 교보문고

달을 보며 빵을 굽다 | 여행하는 제빵사가 전하는 현실을 포기하지 않고도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일본의 작은 도시 단바. 그곳에는 달의 주기에 따라 20일은 빵을 굽고 나머지 10일은 여행을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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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보며 빵을 굽다’ 북칼럼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 꽤 인기를 얻은 MBTI 테스트는 Me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모녀지간인 케서린 브릭스와 이사벨 마이어가 1900년대 초반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의 연구를 기반으로 만든 성격 유형 테스트다. MBTI는 검사 결과를 총 8개의 알파벳 중 4개를 조합하여 완성한다. 네 자리의 알파벳 중 첫 번째 자리는 E 혹은 I, 두 번째 자리는 S 혹은 N, 세 번째 자리는 F 혹은 T, 네 번째 자리는 P 혹은 J다. 각 알파벳은 테스트 대상이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감각적 인식에 의존하는지 직관에 의존하는지, 사고에 의한 판단을 주로 하는지 감정적인지, 자신에게 전달되는 정보를 주체적으로 판단하는지 혹은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나타낸다.
 
MBTI 테스트의 몇 가지 장점 중 대표적인 것은 피검사자에 대한 정보를 본인에게 다시금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것을 선호하고 어떤 경향이 있는지를 알려주기에 개인적 성장을 도울 수 있다. 추가로 MBTI 테스트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유리하다. 직장이나 하나의 팀 내에서 서로의 MBTI를 알고 있다면 협업하거나 마찰이 생겼을 때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을 진행하고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여느 심리 테스트와 마찬가지로 단점도 분명하다. 테스트할 때마다 결과가 바뀌는 경우가 많아 신뢰도가 떨어진다. 이에 더해, 두 개의 정 반대 위치의 성향을 하나로 고정해서 지나치게 성격을 단순화시키는 결함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MBTI의 첫 번째 알파벳인 E와 I는 Extrovert(외향적 인간), Introvert(내향적 인간)를 뜻하는데, 실제로 사람은 온전히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이지 않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른 성향을 보이기에 성격 유형 검사로서 제한적인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처럼 장단점이 분명한 MBTI 테스트를 해 본 적이 없다. 나의 성격 유형이 궁금하지도 않거니와, 테스트 결과가 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며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나와는 성격이 정반대인 사람과 꽤 긴 시간을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 24시간을 붙어있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 사람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 함께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데, 계산하기도 전에 매대에 있는 빵을 뜯어서 먹는 모습을 보았다. 이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나는 그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계산도 하기 전에 음식을 먹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했다. “어차피 계산할 건데 먼저 먹으면 어때.” 꽤 오래전 이야기지만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마트에서 계산 전에 음식을 뜯어서 먹지 않는다. 그 행위가 위법이라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다. 하지만 그 사람과의 그 일 이후 마트에서 계산 전에 음식을 먹는 사람을 더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이 맞다’라고 규정할 수는 없겠다. 돈을 내지 않고 음식을 먹고 나서 계산을 하는 행위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후불 식당에서 하는 행동과 다를 것이 없다. 물론 사회적 합의와 암묵적 계약으로 인해 우리는 공중도덕을 지키며 살기에 대부분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규칙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이상 규칙에서 정한 부분을 어기지 않는 행위가 반드시 비난받을만한 행동인지는 생각해 볼 만 하다. 한밤중에 차도 사람도 아무도 없는 건널목에서 반드시 신호를 지켜 길을 건너는 것과 무단횡단을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 교통 신호를 준수하는 것이 다수의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그것에 해를 입히지 않는 범위 내에서 누리는 자유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만한 일인가? 그 사건 이후 이런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 사람을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기회가 없었다면 내 생각과 행동은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경험하면서 바뀌어 갔다. 내향적인 줄만 알았던 나는 어느새인가 외향적이기도 한 나의 모습을 발견했고, 내가 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실은 나의 결정이 아닌 나의 과거의 선택이 만들어 낸 나의 형상이며 그 형상이 나 대신 선택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의 나라면 했을 선택을 반대로 해 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새로움의 연속이었으며 분명한 단점도 존재했지만,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던 나는 특별한 계기 없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커피를 볶고 빵을 굽는 일을 배웠고, 이제는 직업으로 삼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의 선택으로 머물러 있던 삶이 바뀌어 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명확하겠다.
 
이런 면에서 MBTI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의존은 분명 위험하다. 앞서 이야기 한 대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그 장점이 자신을 고착화해 내가 바라보는 나를 고정시킬 뿐 아니라, 알파벳 네 글자는 사회적 언어로 작용하여 남이 나를 보는 시선 역시 미리 정해두기 때문이다. MBTI가 뭐에요? 라는 질문을 통해 알아낸 상대방의 알파벳을 해석하고 나의 그것과의 상관성을 생각할 시간에, 상대방의 눈과 나에게 하는 행동을 한 번 더 보고 관심 있는 주제와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자. 네 개의 알파벳이 주는 과거의 힌트로 만들어진, 본인이 보는 본인에 대한 불확실한 정보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고 싶은 빵을 만들며 이따금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운 작업 방식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먼저 해보고서 안되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히요리 브롯은 첫걸음을 내딛었다.”

 

“내 인생은 누군가의 제안에 모든 것을 걸어보는 모험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많은 변화와 기회를 맞이할 수 있었다”

-달을 보며 빵을 굽다 -
 
 

‘달을 보며 빵을 굽다’의 저자 쓰카모토 쿠미는 리쿠르트라는 회사에서 벗어나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을 용기 있게 시도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겨나게 만든 작가의 호기심과 실행이라는 모험을 걸어볼 수 있는 그 용기가 지금의 빵집인 히요리 브롯을 만들었다. 사람의 미래는 그 사람이 겪어낸 과거가 결정한다. 현재의 내 모습과 선택은 곧 과거가 되기에 미래에 내가 원하는 모습을 위한 선택들로 현재를 채워나간다면, 어느새 나는 원하는 모습의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해보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는 호기심 가득한 눈을 가지고, 흥미로운 무언가를 발견했다면 그것에 도전할 용기를 가지고 살아보자.